시민공감 기자단 기사
시민기자단_남혜경
조선은 부산에 이어 1880년에 원산, 1883년에 인천항을 차례로 개항했습니다. 개항 소식이 들려오자, 일본뿐만 아니라 서양의 여러 배까지 개항한 항구로 몰려들었습니다. 인천은 개항과 함께 서양 문물이 들어오는 가장 중요한 항구로 거듭납니다. 그리고 항구 주변은 서양인들이 모여 사는 조계지가 만들어지고, 은행, 극장, 호텔 등 서양식 근대건축물이 세워졌습니다.
도시재생이 아니라 뜬금없는 근대역사 이야기에 당황하셨죠. 본론으로 가기 위해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인천시 중구에 있는 인천 개항장에는 19세기에 지은 건물들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이곳은 도시재생을 통해 전시관, 박물관, 역사관으로 거듭났습니다.
(상단좌측 이미지부터)인천개항 박물관 외관, 인천개항박물관 내부, 광제호 태극기, 일본제1은행 당시 금고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은 1883년 인천 개항 후 일본제1은행 부산지점의 인천출장소로 개설된 곳입니다. 지상 1층 건물로 석재 기단부와 수평 줄눈의 안정되고 견고한 외관을 지니고 있으며, 현관 상부는 아치구조, 지붕에는 중앙 돔과 작은 천창을 설치했습니다. 처마 부분에는 동그란 구멍이 뚫린 석조 난간을 올렸습니다.
그 당시에는 개항기 조선에서 생산된 금과 사금의 매입업무를 주로 대행했으며, 인천항을 왕래하는 무역상인들을 대상으로 해관세를 받는 업무도 병행했습니다. 출장소에서 지점으로 승격되면서, 2층의 목조건물은 현재의 석조건물로 개축했고, 창문과 금고, 기둥 등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인천개항박물관은 개항기 인천을 통해 소개된 근대문화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개항 이후 근대 인천의 면모를 학습할 수 있는 박물관입니다. 제1 전시실은 1883년 인천 개항 이후 인천항을 통해 들어온 근대문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광제호 태극기는 1904년 11월 취역한 대한제국 군함 광제호에 게양했던 대형 태극기입니다. 신숭성 함장이 경술국치 전날 광제호에서 수습해 신함장의 후손에게 전했다고 합니다.
제2 전시실은 우리나라 최초의 경인 철도와 그때 사용했던 완목신호기와 신호 레버, 통표걸이 등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제3 전시실은 인천 개항장 일대 당시 풍경과 입체 거리 모형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제4 전시실은 은행이던 시절 금고로 사용하던 공간입니다. 돌문에 이어 검은 철제문까지 멀리서 봐도 금고처럼 보입니다. 금고라면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지만, 지금은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과 관련된 자료를 볼 수 있는 누구에게나 개방된 전시실입니다.
(상단좌측 이미지부터)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 외관 및 내부, 오례당 저택 모형, 일본제18은행 당시 금고
일본제18은행 인천지점은 제18은행이 1890년 해외에 세운 최초의 은행지점입니다. 일본이 중국을 상대로 한 면직물 중개 무역이 번창하자, 수출입과 통관 업무의 중심지였던 인천에 지점을 개설했습니다. 단층 건물로 기단부와 기둥은 돌을 사용했으나, 벽체는 벽돌을 쌓은 후에 시멘트와 모래 반죽으로 마감해 석조건물처럼 보이게 한 절충주의 양식 건물입니다. 정면 출입구의 상부와 좌우 기둥은 석재로 장식했습니다.
인천 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은 개항 이후 각국 조계지에 건축된 서구 근대건축물과 관련된 자료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1, 2전시실에는 인천 개항 이후의 모습과 건축물들을 사진과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3전시실은 답동성당, 대한성공회 인천 내동교회, 홍예문, 인천부청사, 제물포구락부,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 일본제18은행 인천지점, 일본58은행 인천지점, 인천우체국, 인천세관, 영국영사관, 세창양행사택, 오례당저택 등 현존하는 건물에 이어 소실되어 지금은 만날 수 없는 건축물 모두 모형(미니어처)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은행이었으니, 금고도 당연히 있어야겠죠. 역시나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 당시 사용했던 금전등록기와 함께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상단좌측 이미지부터)인천세관 창고 외관, 인천세관 역사관 내부, 인천세관 관내지도, 인천세관 청사 모형
인천세관은 목조건물로 당시 전국 세관청사 중 최대 규모였으며, 인천항의 랜드마크였다고 합니다. 1층에 민원 사무공간이 배치되어 있고, 2층에 세관장실과 회의실 등이 갖춰져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전쟁 때 세관 건물은 불에 타 사라지고, 세관창고만 남았습니다.
세관창고는 전면 입구를 중심으로 좌우가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건물의 처마와 창 테드리 장식 등은 15~16세기에 발달한 르네상스 양식입니다. 창고 측면 좌우 벽면 끝은 기둥 상부에 사각형 석판을 올리고 그 위에 둥근 형태의 장식을 했습니다.
인천세관은 1883년 제물포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관세행정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개항 당시 관세행정뿐만 아니라 우편, 검역, 기상관측, 항로표지, 항만시설 건립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인천세관 역사관은 개항기 세관 업무를 포함해 인천세관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상단좌측 이미지부터)공화춘 외관, 공화춘 외관, 짜장면 박물관 내부, 졸업식은 짜장면 먹는 날
공화춘은 1908년에 지어진 2층 건물로, 외부는 벽돌로 마감하고 내부는 다양한 문양과 붉은색을 사용해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1980년까지 명성을 날리던 중국집은 도시재생을 통해 100년의 역사를 지닌 박물관이 됐습니다.
국내 최초의 짜장면 박물관은 총 6개의 상설전시실과 1개의 기획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짜장면의, 짜장면에 의한, 짜장면을 위한 곳으로 유래와 역사를 시작으로 시대에 따른 짜장면에 대한 추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짜장면은 개항기에 화교들을 통해 처음으로 소개된 중국 산둥 지방의 음식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1층은 1960년대 공화춘의 주방 모습을 재현했습니다. 수타, 칼판, 화덕 주방 등 그 당시 짜장면을 조리하는 광경을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모형이라서 음식 냄새는 나지 않는답니다.
2층은 1970년대의 중국 음식점 풍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졸업식 후 가족과 함께 짜장면을 즐기는 모형과 함께 짜장면 가격의 변천, 분식 장려 운동 등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초기 나무배달 가방에서 오늘날 철가방에 이르기까지 배달 가방 연대기에, 짜장라면의 시대별 변천사도 만날 수 있습니다.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 일본제18은행 인천지점, 인천세관창고, 공화춘을 문화재 보호 목적 도시재생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건물 외관만을 보고 여기는 이런 곳이었구나 하면서 수박 겉핥기만 했을 겁니다.
하지만 도시재생을 만나 인천개항박물관으로, 인천 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으로, 인천세관 역사관으로 그리고 짜장면 박물관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기존의 역사에 새로움을 더하고, 다양한 볼거리를 꽉 채웠습니다. 인천의 개항과 함께 130여 년 세월의 흔적이 쌓인 개항기 역사와 문화를 시간여행을 떠나 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