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공감 기자단 기사
시민기자단_고혜정
지난 8월 8일, 서울에서는 115년 만의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하천으로 변한 8차선 도로에는 자동차들이 떠다니고 지하철 역사 천장이 빗물에 무너지는 장면이 실시간 뉴스로 중계됐습니다. 안타까운 사망과 실종 소식, 실낱같은 희망도 잃은 이재민들 모습도 함께 전해졌습니다. 뉴스 속보를 지켜보며 마치 다른 나라 일 같기만 했던 건 자타공인 노잼도시라지만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한 대전이기 때문이지요.
서울과 수도권을 시작으로 제주도까지, 우리나라 전역이 위에서 아래로 훑어 내려오듯 늦장마에 시달릴 때 뒤늦은 사고원인 조사와 수재해 대책들이 쏟아졌습니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빗물이 통과하지 못하는 불투수 포장 면적에 대한 지적이었습니다.
도시화가 심해질수록 빽빽이 들어선 콘크리트 건물과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와 주차장 등이 늘어납니다. 하지만 이러한 불투수 포장 면적은 빗물이 땅속에 스며드는 것을 어렵게 하여 많은 비가 내리면 그대로 배수로나 하수구로 유출되고 그 용량을 초과하면 곧바로 홍수로 이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불투수 포장 면적은 호우뿐만 아니라 또 다른 환경문제도 낳습니다. 빗물이 지하로 흘러들지 못하면 지하수가 고갈되고 하천이 마르게 되어 수질오염이 생깁니다. 또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시에서는 열섬현상이 더욱 심해집니다.
도심의 불투수 포장 면적에 대한 관심은 여름철 집중호우와 폭염 예방책에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한해 강수량의 74%가 여름 장마철에 몰려있어 수자원 관리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1993년 국제인구행동단체(PAI)에 의해 '물 부족국가'로 분류됐고 2012년 OECD가 발간한 '2050 환경전망' 보고서에서도 ‘물 부족 국가’로 평가됐습니다.
대전 물순환 선도도시 조성 시범사업 안내판
이에 대전에서도 빗물을 안전하게 처리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대전 물순환 선도도시 조성 시범사업>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물순환 선도도시’란 빗물이 땅속으로 잘 스며드는 투수성 블록, 식생 수로, 빗물 체류지 등 저류 여과 시설을 도시 곳곳에 설치하여 기존 도시에 비해 빗물 저장 능력이 뛰어난 도시를 일컫습니다.
이 사업은 2020년 9월부터 올 10월까지 장장 2년에 걸쳐 둔산 1·2동, 월평 1·3동, 갈마 1동 등을 대상으로 국비 포함 250억 원을 들여 진행되고 있습니다. 샘머리·은평·갈마·둔지미·보라매, 시애틀 등 6곳의 도심근린공원, 한밭대로·대덕대로·둔산로 등 총길이 27km에 이르는 도로, 대전고등법원·대전고등검찰청·대전시교육청·대전경찰청·둔산경찰서·둔산중학교·서대전세무서·LH대전충남지부·한국환경공단충청본부·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 등 10개 공공기관에 최적의 저영향개발 시설을 설치하게 됩니다.
식생체류지원과 안개 그늘막이 설치된 벤치 주변
저영향개발(LID, Low Impact Development, 低影響開發) 시설은 빗물이 땅속으로 침투되지 못하는 불투수면을 줄여 빗물 유출을 최소화하고 물순환 기능을 유지·회복시켜주는 시설입니다. 식물을 식재하는 식생형 시설과 지하에 설치하는 침투형 시설로 나뉘는데, 이들 시설을 설치함으로써 쓰레기나 동물의 배설물, 자동차 기름, 흙탕물, 비료 성분 따위가 빗물에 씻겨 강이나 바다로 흘러 들어가 발생하는 비점오염을 낮추고 물순환을 회복하여 자연과 도시 환경을 개선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샘머리 물순환 테마공원
그래서 <대전 물순환 선도도시 조성 시범사업>을 대표하는 ‘샘머리 물순환 테마공원’을 직접 둘러봤습니다. 대전 서구 둔산동 1381번지에 위치한 이곳은 지난해까지 샘머리공원이라 불렸습니다. 둔산권 녹지 축의 중심으로 1988년 약 35,500여 평(117,307㎡)의 대지 위에 조성되어 둥지·햇님·한마루·크로바 아파트 등 인근 지역 주민들의 앞마당이 되었습니다. 또 해마다 힐링아트페스티벌이 개최되어 대전 곳곳에서 찾아오는 대전 대표 도시근린공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곳이 지난해 9월부터 도심 속 물순환 테마공원으로 새롭게 변신하고 있습니다. 대전시가 한국환경공단, 환경부와 의기투합한 덕분입니다. 그래서 지난해 11월 15일에는 ‘물순환도시 선포식’도 개최했습니다. 빗물이 흡수되지 못하는 낡고 오래된 도심공원을 빗물순환 체험학습장으로 조성하는 우리나라 첫 사례인 만큼 지역 정치인들과 관련 공공기관장들 그리고 시민환경단체와 둔산·월평·갈마동 주민대표 등 300여 명이 함께 했답니다.
샘머리 물순환 테마공원 입구 메타세쿼이아 숲길
완공을 1달여 앞둔 지금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했는데 공원 입구 메타세쿼이아 숲길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마다 온전히 숨 쉬고 자랄 수 있도록 정사각형으로 구획을 나누고 뿌리 위까지 넉넉하게 흙으로 덮었습니다. 볕이 잘 들고 흙이 두터운 데다 보기 싫다고 뽑아버리지 않아서 나무 밑에는 갖가지 키 작은 풀꽃들도 모여 삽니다. 또 흙이 쓸려가지 않도록 차돌로 테두리를 둘러 한결 운치 있습니다. 또 공원 중앙의 콘크리트와 각종 시설물을 모두 거둬낸 자리에 초록빛 잔디광장이 들어서고 낡은 인라인 트랙은 투수성 인라인스케이트장으로 교체됐습니다.
식생수로 안내판
겉으로 보기에는 꽃과 나무가 예쁘게 관리되고 있어 평범한 화단인 줄 알았는데 그 앞에는 ‘식생체류지원’, ‘식생체류지’, ‘식물재배 화분’ 등 예쁜 그림과 설명이 곁들여진 안내판이 반겨줍니다. 저마다 역할과 이름이 조금씩 다르지만 식물이 식재된 토양층 밑을 자갈로 채워 빗물이 땅속에 스며들거나 머무르게 함으로써 수질오염을 줄이고 자연스럽게 물순환 기능을 회복하게 하는 식생형 시설입니다.
바닥분수 옆 빗물정원
또 물길찾기 빗물미로원, 미세먼지 저감용 안개그늘막, 벽천그늘막 등이 있어 빗물의 자연스러운 순환과정을 체험할 수 있고 추억의 작두 펌프질도 직접 해볼 수 있습니다. 한여름에는 하루 7번씩, 정각마다 물놀이형 바닥분수가 가동되어 어린이들의 사랑도 받았습니다.
벤치 옆 빗물 저금통
잔디광장을 중심으로 지붕이 있는 벤치가 설치돼 있습니다. 뜨거운 햇볕과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피할 수 있는 쉼터일 뿐만 아니라 빗물저금통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 번씩 비가 올 때마다 최고 4,357톤의 빗물을 가둘 수 있어 침수와 가뭄, 지하수 고갈을 예방하고 폭염이나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도로에 뿌려져 도심 환경을 쾌적하게 하는 등 쓰임이 많습니다. 깨끗한 수돗물 1톤을 만들기 위해 탄소 188g이 배출되지만 비 오는 날 벤치 지붕에서 모은 빗물을 모아 활용하면 탄소 배출까지 줄일 수 있답니다.
추억의 작두펌프
참, ‘샘머리’라는 이름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궁금하시지요? 대전의 3대 하천하면 갑천, 유등천, 대전천 등을 꼽듯, 대전의 3대 샘도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괴정도 배우니샘, 탄방동 숭어리샘, 둔산동 둔지미샘 등으로 이중 둔산동 둔지미샘 위쪽에 자리한 마을을 대대로 샘머리라 불렀다고 합니다. 오래전 맑고 깨끗한 지하수가 샘솟던 곳에서 물순환 테마공원으로 다시 태어난 샘머리 물순환 테마공원. 성큼 다가온 가을날, 산책할 겸 체험할 겸 들러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