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공감 기자단 기사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그를 기억하는 집 “백남준 기념관”

시민기자단_남혜경

백남준은 20세기 현대 미술의 한 장르인 비디오 아트 분야의 선구자입니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1950년에 한국을 떠나 일본, 독일, 미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다가 2006년에 76세 나이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세계 각지를 누비면 살았지만, 한국에서 보낸 시간을 자신의 예술적 모태이자 사상적 기원으로 여겼습니다. 그의 어릴 적 추억이 담긴 창신동 옛집은 도시재생을 통해 그를 기억하는 집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백남준 기념관 입구, 철제 대문을 중심으로 앞뒤에 빛의 문과 영상의 문을 설치하여 3중의 문을 연출

백남준 기념관 입구. 철제 대문을 중심으로 앞뒤에 빛의 문과 영상의 문을 설치하여 3중의 문을 연출

마당에 있는 작품은 김상돈의 수월과 웨이브

마당에 있는 작품은 김상돈의 수월과 웨이브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 197번지에 있던 백남준의 집은 작가 본인에 의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습니다. 백남준은 특유의 장난기에 어린 말투로 그가 살던 집을 ‘큰 대문 집’이 옛날 외무대신이 쓰던 집으로,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쪼가리만 남았다고 했습니다.

2015년에 창신·숭인 도시재생 선도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백남준이 1937년부터 1950년까지의 성장기를 보낸 이곳 일대 집터에 있는 한옥을 매입해, 백남준 기념관으로 2017년 3월에 개관했습니다. 즉, 실제로 그가 살던 집은 아닙니다. 한국전쟁과 도시 개발을 거치며 파편화된 집터에 자리 잡은 가옥 중 하나에 새롭게 조성한 것입니다.

백남준 기념관 건물은 1960년에 축조된 총면적 93.9㎡(약 28평)의 단층 한옥입니다.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해체하고 노화된 부분을 교체 후 재조립하는 공정으로 도시재생을 했습니다. 창신동 일대를 아우르는 시간과 공간의 기억을 존중하되 의도적으로 옛것을 연출하는 장식이나 개조는 배제했습니다. 한옥 마당과 전시실을 잇는 바둑판 모양의 단색조 바닥은 기념관 전체에 실내외 구분 없이 흐르면서 기하학 속에서 다양한 변화를 수용하고 상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전시실 입구와 백남준 이야기 공간

전시실 입구와 백남준 이야기 공간

백남준 버츄얼뮤지엄

백남준 버츄얼뮤지엄

백남준 이야기는 그의 생각들을 공유하기 위한 공간으로, 그의 삶과 예술에 더욱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기획된 스토리텔링 시리즈입니다. 그가 읽었던 책, 들었던 음악, 학창 시절의 흔적, 그가 남긴 드로잉과 메모, 지인의 회고 등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도올 김용옥과의 대화를 소개합니다.
“날 자꾸만 서양에서 다 배운 사람인 줄 아는데 난 사실 인생을 결정지은 사상이나 예술의 바탕은 이미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에 한국에서 모두 흡수한 거거덩. 우리나라 일제시대 때 한국 예술가들 수준에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우. 난 쇤베르크나 스트라빈스키두 이건우 선생한테서 유학가기 이전에 다 배운 거구. 신재덕 선생이나 이건우 선생 같은 분이 가르쳐주신 수준이나 내가 김순남 선생을 사사한 수준이 내가 독일 가서 작곡가 노릇 할 수 있었던 바탕을 다 만들어 주셨던 거거덩. 역사를 자꾸 단절적으로 보면 안 돼. 우리는 일제시대 때 문화두말이지, 전통문화구 서구문화구 다 높은 수준으로 그래도 가지구 있었거덩. 난 그걸 흡수한 거야. 그리고 내가 내 속에서 가지도 있었던 전통문화하구 서양의 아방가르드가 결국 비슷한 거란 것을 내가 나중에 발견한 것뿐이지.”

백남준 버츄얼뮤지엄은 백남준의 연혁, 전시 경력, 작품, 어록 등 그의 예술가 생애에 관한 데이터를 열람할 수 있는 데이터뱅크입니다. 우리는 아날로그 TV 수상기 앞에 앉아 TV 채널 다이얼로 메뉴를 선택하며, 그에 대한 데이터 세계를 만날 수 있습니다. 버츄얼뮤지엄에는 782건의 자료 정보와 425장의 이미지 데이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백남준의 방과 뉴욕 소호의 백남준 작업실

백남준의 방과 뉴욕 소호의 백남준 작업실

백남준의 책상

백남준의 책상

백남준의 방은 그의 유년 시절, 지역성, 아시아 문화의 전통과 맺고 있는 관계를 탐구하고자 별도로 편성된 복합설치 공간입니다.

백남준의 책상은 그의 ‘태내기 자서전’과 유치원 친구 이경희 여사의 회고록 일부를 미디어 극장처럼 연출한 설치물입니다. 독서와 글쓰기, 추억여행은 백남준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활동이었다고 합니다. 종이로 된 공책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라디오와 TV, 프로젝터가 작동합니다.

백남준 카페와 피아노 테이블

백남준 카페와 피아노 테이블

백남준 기념관은 전시 공간 외에 카페 공간을 따로 마련했습니다. 백남준 카페는 지역 주민들이 운영하며, 이곳을 방문한 관람객에게 휴식과 함께, 백남준의 유치원 친구 이경희 여사가 헌정한 책을 열람할 수 있습니다.

백남준 카페에는 독특한 모양의 피아노 테이블이 있습니다. 피아노는 어린 시절 백남준에게 예술적 감수성을 키워준 악기입니다. 그러나 부친은 그의 음악적 감수성을 마땅찮게 여겨, 백남준은 피아노가 치고 싶을 때는 집 뒤의 동산에 올라 몰래 피아노를 쳤습니다. 어린 시절과 달리 이십 대 백남준에게 피아노는 유희와 풍자, 해체와 재구성의 대상이었습니다. 훌륭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지만, 멋진 곡조를 연주하다가도 피아노를 밀쳐 넘어뜨리거나 망치로 때리고 그 속에 이물질을 채워 넣거나 형태를 개조하기도 했습니다.

백남준 기념관은 2016년 그의 탄생일을 기념해 거행된 발대식에서 창조와 파괴, 탄생과 죽음을 하나로 보았던 백남준의 뜻을 기려 피아노를 부수는 축하 퍼포먼스를 가졌습니다. 피아노 테이블은 그때 부서진 피아노의 잔해를 재생한 작품입니다.

1984년 어느 날, 김포공항에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세계적인 전위예술가 백남준이 나타났습니다. 괴상한 차림새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대화,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행동거지는 연일 화젯거리가 됐습니다. 그때는 그랬는지 몰라도, 지금은 평범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1990년에 백남준은 큰 대문 집이 있던 장소를 찾아가는 영상기록을 남겼습니다. 영상에는 도포를 차려입고 지게에 지구본을 싣고 종로통을 지나 사라진 집터 앞에서 자기 누이와 유치원 친구와 함께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가 그토록 찾고 싶었던 옛집은 사라졌지만, 우리는 그를 기억하는 집에서 영원히 백남준을 기억하겠습니다.